Page 18 - 붓다동산7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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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가‘공’하다는 법공(法空)3)의 이치를 깨닫게 3. 다리는 건너기 위한 구조물, 직접 건너
하려는 선조사 스님들의 교육적 배려라 한다. 봐야 한다.
2. 노행자(盧行者)의 심장소리를 지금도 들 이런 이치에 공감대가 형성되어서일까?! 승선
을 수 있는 곳, 승선교! 교와 강선루에 대한 화가(畵家)나 사진작가들의
관심과 사랑은 대단하다. 그 가운데서도 다리 아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無所住 래 공간을 통해 보이는 강선루를 화폭과 필름에
而生其心 다투어 담는다. 공간의 제약을 극복하고 두 구조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응무소주 물을 함께 담으려는 멋진 발상이다. 그런데 그림
이생기심 이나 사진에는 으레 두 번째 다리만 들어가 있
색에 머물러 마음을 내서는 안 되고, 성 . 향 . 다. 그렇다고 아쉬워 할 일은 아니다. 첫 번째 다
미 . 촉 . 법에 머물러 마음을 내서도 안 되나니, 리는 아공(我空)을 일깨워주려는 것인 만큼 자신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야 하느니라. 의 마음속에서 찾으면 된다.
승선교와 강선루에 담긴 가르침은 생각하는 것
-『금강경』莊嚴淨土分 第十(장엄정토분 제십)- 만으로도 이미 열반의 문고리를 잡은 것 같은 착
각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자
장차 중국 선종의 제오조(第五祖) 홍인 弘仁( )4) 칫 느낌만으로 그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다리
스님의 맥을 잇게 될 노행자(盧行者)5)의 가슴을 는 건너기 위한 구조물이다. 직접 건너봐야 한
두드렸던 게송(偈頌)이다. 그리고 선암사의 주산 다. 그래야 승선교 건너 피안(彼岸)의 누각인 강
(主山)은 산 이름만 조계산(曹溪山)이 아니라 그 선루에 태고로부터 마중 나와 계신 금선(金仙)을
게송을 듣는 순간 두방망이질 치던 노행자의 심 만나 뵐 수 있지 않겠는가?!
장소리를 지금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신선의 4.‘수계산림’은 삼아승기겁을 돌아 옛 고
세계, 그것도 금선(金仙)6)이신 부처님의 세계로
올라가는 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이 향에 이르는 일
‘승선교(昇仙橋)’다. 그리고 보니 매년 한 번, 태고종 총본산이자
어디 그뿐이랴 몇 걸음 옮기면, 다리를 건너오 종정 예하께서 주석하고 계신 이곳 선암사에는
는 사람을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 주는‘강선루 금강계단이 개설된다. 백 명 안팎의 행자들이 운
(降仙樓)’라는 이층 누각이 눈앞에 우뚝하다. 금 집해 수계산림(受戒山林)에 사활을 건다. 산림
선(金仙)께서 내려오시는 누각! 그렇다. 부처를 막바지에는 절 어귀에 자리한 부도전(浮屠殿)에
알아볼 수 있고 마중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부처 서 조사스님들을 배알하며 마음을 새롭게 다지
뿐. 그렇다면 강선루는 이미 그 자체가 공의 이 고, 일보일배(一步一拜)로 승선교를 건너 강선루
치를 깨달은 새 부처를 맞아주시려는 묵은 부처 를 지나 일주문 그리고 대웅전 앞까지 올라간다.
님이시다.
년 월호16 | 2017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