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붓다동산7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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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사찰 전경

차지하였다. 이로써 오대산이 정치 군사의 요충 『화엄경론』은 일부만 남아 있다. 송광사에 있던
지가 되었다.              것이 최근 서울대 규장각으로 옮겨졌다. 이『화엄
북위시대에 효문제는 오대산을 참배하며 기도 경론』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감동을 주고 분량 면
한 왕으로서 불심으로 운강석굴을 몇 십 년에 걸 에서도 압권이다.
쳐서 조성하여 국력을 과시하였다. 거기서 성공 중국인들은 오대산의 신선사상과 불교사상을
하여 낙양으로 진출해 중국을 통일한 후 다시 용 접목시켰는데, 이에 관해 전해 오는 일화가 있
문석굴을 조성하였다. 이처럼 오대산은 왕들이 다. 효문제가 산 정상에 올랐는데 한 동자가 나
참배하고 불심을 키운 산이다. 불교가 들어오기 타나“당신이 불심이 있다면 나에게 방석 하나 깔
전, 이 오대산은 신선사상의 중심지로서 중국인 정도의 땅을 주십시오”라고 했다. 효문제가 그렇
들에게 동경의 산이었고 기도하면 영험이 있는 게 하라 하여 동자가 방석을 허공에 던졌더니,
산이었다.                방석이 펼쳐지면서 오대산의 가장 높은 5개 봉우
그럼 언제부터 오대산에 불교가 유입되어 불교 리를 다 덮어버렸다.
의 성지가 되었을까? 북위시대에는 왕들이 기도 동서남북으로 백 리, 오백 리를 덮은 모습에
하고 불심으로 나라를 통치했던 것과 관련이 있 효문제가 놀라자, 동자는“그저 방석 하나지 않
으나『, 화엄경』과 관련하여서는『화엄경』을 체계 습니까?”라고 했다. 이에 효문제가 오봉에 냄새
적으로 설명한 영변 스님이 계시던 곳이기도 하 나는 부추를 쫙 깔아버렸다. 그러자 동자가 선
다. 이 스님은『60화엄경』에 대한 주석서『화엄 복향, 또는 영릉향이라는 향을 심었다. 그러자
경론』100권을 저술하셨다. 이 영변 스님이 쓰신 부추에서 냄새가 나지 않아 스님들이 수행하기

년 월호22 | 201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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