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붓다동산7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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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한 것. 흥법, 탑상, 의해, 신주, 감통, 피은, 두고, 흥법 이하 불교전반을 일곱 편목으로 서술
효선은 불교의 신이를 기록한 것이다. 하여 고승전과 사서를 혼합한 종합적 역사서이다.
몽고의 침략과 원 간섭기 어려움에 빠진 고려 2. 발간 과정
의 민중들에게 몽고보다 우수한 불교문화와 역 1) 사료를 수집한 것은 청년시절, 그 원고의 집
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적 자긍심을 살려 정신적 필은 대개 대70 후반에서 세84 입적까지 말년에
가치를 열어주기 위함이다. 이루어졌다. 저자 일연에 의한 초간본의 간행 여
부는 분명하지 않다.
[삼국사기와 같은 유교적 정치사관은 몽고의 간섭 2) 년대1310 제자 무극(無極)이 삼국유사 간
기 같은 시기에 이르면 현실적 모순을 극복하는 힘 행. 그가 첨가한 기록이 두 곳 있다.[무극기(無極
을 발휘하기 어렵다.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역사 記)] 무극의 간행이 초간인지 중간인지 분명하지
의식은 정신적인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외세의 압력 않다.
을 극복하고자 하는 정신사관이 나타난다.] 3) 조선시대 삼국유사 간행. 고판본의 印本인
[일연은 삼국사기의 원천인 유교사관을 부정하지 石南本[王歷과 제1권만 남은 잔본]과 松隱本[3·
않았다. 유사를 편찬하면서 사기에 나오는 사론을 여 4·5권만 있는데, 권3의 첫6장까지와 권5의 끝
러 군데서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분 4장이 없는 잔본].
4) 년 중종1512 ( 7) 경주부윤 이계복(李繼福)이
유사라 이름 한 것은 史家의 기록에서 빠졌거 중간한 삼국유사는 중종임신본(中宗壬申本) 또
나 자세히 드러나지 않은 것을 드러내 표현한 것 는 정덕본(正德本)이라고 한다. 이본의 권말에는
을 말한다. 즉 기존 사서에서 간과해버린 고대사 중간 경위를 밝힌 이계복의 발문이 붙어 있다.
와 불교사의 많은 부분을 다방명의 사료를 모아 이 발문에 의하면, 당시 경주부에는 옛 책판(冊
폭넓게 전개한 것이다. 특히 삼국사기에서 제외 板)이 보관되어 있었지만, 1행 중 겨우 4, 5자를
된 고대 문화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특히 불교사 판독할 수 있을 정도로 마멸이 심하였다. 이계복
를 중심으로 유사를 편찬하였다. 은 완전한 인본을 구해서 책판을 개간하였다. 이
일연은 민간 전래의 사료를 채록하여 서술함으 계복이 중간한 책판은 19세기 중반까지 경주부
로써 서민들의 열렬한 신앙심을 북돋아주었고, 에 보존되었지만 전하지 않는다.
고려 후기 지방 향리층의 중앙 진출과 기층사회 중종임신본을 인행(印行)한 몇 종의 간행본이
의 활발한 움직임을 정리하였다. 현재 국내외에 전한다. 5권이 갖추어진 완본인
유사의 분량에서 왕력과 기이편이 절반에 이른 순암수택본(順庵手澤本)은 이계복이 판각한 뒤
것을 보면 일연이 국가와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컸 년32 이내에 인출된 것으로, 훗날 순암안정복(安
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중국문화와 대등한 우 鼎福)이 소장하면서 가필을 한 때문에 이와 같이
리문화의 자긍심을 표현한 것이다. 불린다. 이본은 이마니시(今西龍)가 년부터1916
유사는 왕력편과 기이편 등 일반 역사를 앞에
년 월호26 | 201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