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2 - 붓다동산7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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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페트라는 그리스 문화 양식인 이오니아식과      어느새 사하라의 석양이 요르단의 공항에 길게
코린트 양식기둥(bc4-5세기 유행) 그리고 이슬   드리우고 나는 붉은 홍차 한잔을 큰 컵에 담았
람식의 돔형식이 적절히 섞인 웅장한 유물이다.     다. 따끈한 아랍의 홍차는 달달하면서도 목 넘김
60미터 높이와 정교한 코린트식 겹친 입새문양     이 부드럽다. 중동의 모든 일정도 천천히 녹아
                              든다. 검은 부르카를 두른 여인이 어린 아들을
                 이 참으로 정교하    안고 큰 가방은 들고 눈만 빠꼼이 보인체 한참
                 여 그리스 본토의    을 두리번 거리며 서성이다 아직도 그 자리이
                 유물과도 손색이     다. 나는 아이도 안지 않고 무거운 가방도 없고
                 없으니 신의 건축    온몸을 휘감은 부르카도 안 썼는데... 이제 출발
                 물이라 했구나 싶    할 때의 기대와 불안도 없는데... 이 마음은 왜
                 다. 다섯 시간을 걸  점점 가볍지 않을까.
                 어서 가는 중간에    부르나 존자는 이교도의 전법을 나가려 할때
                 원형경기장은 콜롯    부처님께서 세 번을 만류함에도 그 길을 떠나셨
                 세움의 축소판정도    으니 그 의지가 목숨을 넘은 것이다 그러나 나
                 인데 마지막 산정    는 이 중동의 법회를 끝내고 누군가를 전법하기
                 상의 모나스트리는    전에 자신 만이라도 부처님의 길을 따라가려는
세시간을 걸어 올라온 순례자에게 큰 선물이라      의로운 수행자로의 삶이 무엇인가.
도 주는 듯이 다시 한번 웅장한 석조의 깊은 전    다시 한번 다져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도지행
율이 그대로 전해온다.                  보살 그는 작지만 분명 빛나는 부처님의 보살행
 산에 오르는 동안 열사의 더위로 흘린 땀을 시    이였다. 그의 방에 붙여진 글귀가 아직도 눈에
원한 산바람으로 날려주는 것과 발아래 끝없이      선하다.
펼쳐진 사하라의 풍광은 사막이 주는 덤이였다.           동산불교대학·대학원
감동이 밀려오는 동안 시간이 훌쩍 지나 돌아가
는 길에는 당나귀의 등을 빌려 급히 내려가 나는          DongSan Buddhist Academy
겨우 막차를 탈 수 있었다.
 시리아와 인접하여 난민들 유입이 많고 중동국     부처님은 나를 잊지 않으시는데 나는 늘 잊어버리고
가이면서 석유가 나지 않는 지리적 여건이 국민들    부처님의 빛 등지고 어둠의 자식노릇 하고 있으니
을 빈곤으로 몰고 있긴 하지만 무슬림의 기도와     누가 있어서 나를 돌이켜 세우고
정신력은 그들을 더욱 강한 생존력과 자존감을      누가 있어서 나에게 빛을 보여 주겠는가
주는 듯이 보였다. 한국 교민들은 2000여명으로   오직 나
불자들은 주로 삼삼오오 한 집에 모여 법회를 보    나 홀로 뒤 돌아 서고
고 있다고 하니 그 또한 고무적인 생각이 든다.    나 홀로 빛을 마주 하는 것
                              그것만이 잠시도 쉬지 않으시고
                              나를 향해 구원의 빛을 비추고 계신
                              부처님의 지혜 광명에 가까이 가는 길이다.

년 월호20 | 201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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