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붓다동산7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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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샬리는 부처님께서 마지막 안거를 보내면 써 날아가고 목을 따라 넘어가던 짜이 맛만이 기
서 자신의 열반을 예고했던 곳이었다. 또 부처님 억에 남아 있었다.
열반 후 이곳에 진신사리 탑이 모셔지기도 했다.
가장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는 아소카의 석주 위
의 사자상은 열반에 든 쿠시나가르의 북녘하늘
을 바라보고 있었다.
쿠시나가르 열반상 네팔검문소
부처님의 가사를 모두 나눠들고 열반당을 세 인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우리는 걸어서 네
번 돈후 안으로 들어섰다. 길이 의6.1m 큰 키의 팔의 국경선을 넘었다. 물자를 싣고 네팔을 넘기
부처님이 열반하셨을 때 모습으로 부처님 가시 위해 기다리고 있는 트럭들이 끝이 없이 보인
는 길을 보고 있는 듯한 마음이었다. 지금까지 다..오늘 안으로 이곳을 지나가게 될까..룸비니
부처님의 발자취만을 따라 오다 보니 죽음에 까 까지 같이 가려고 했던 가이드브라질시와 부다
지 다다라 있었다. 열반당을 나와 어디론가 향했 가야부터 같이한 해피스님은 여기서 헤어져야
다. 대한사스님의 스승인 미얀마스님의 수계가 했다. 버스에 운전수까지..
이루어졌다. 이곳에서도 바라춤과 승무는 이어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에 도착했다. 무수
졌다. 나로서는 인도에서의 수계식이 의미가 컸 나무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마야데비사원에서
다. 처음 받는 법명과 부다가야 해피스님에게 불 사진 찍으면 안 되는 줄 모르고 여러 명이 찍었
상을 선물 받은 것이다. 쿠시나가르 대한사에 지 다. 지우라고.. 지우라고.. 핸드폰검사까지 한다.
금까지 같이 한 옷짐들을 내려놓았다. 추위에 떨 겁먹은 나는 내핸드폰까지 검사할까 봐 두 장을
사람들을 위해 법인스님의 보시가 이루어 진 것 얼른 지웠다. 옆으로 나오니 마야부인이 출산 후
이다. 목욕을 했다는 구룡못이다. 물에 비친 무수나무
짜이 한 잔이 그리운 날씨다. 생강냄새 은은히 와 사람들이 흔들리고 있다.
풍기는 달콤한 짜이. 잠깐 쉬는 주유소에서 알게 포카라로 향하는 여정은 여전히 엉덩이가 무겁
된 짜이 레시피. 꼭 끓여 먹어 보리란 결심은 벌 다. 몇 시간을 달리고 있는 건가..식사 때도 제대
로 맞출 수 없어 휴게소에서 라면과 죽으로 저녁
을 먹었다. 이것도 여행의 묘미 아닐까..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랑곳으로 향한다. 후레쉬
에 의존한 채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짧지 않았
년 월호16 | 2016 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