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 - 붓다동산7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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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푸른빛을
 세계최초최대의 불교대학이 세워졌던 나란다                          품으며 빛을
대학에 들어왔다. 13세기 이슬람교도에 의해 사                       내고 있는
라질 때까지 세계 불교의 정신과 사상의 중심지                        부처님이 우
였는데.. 한창때에는 일만 명의 학승과 이천 명                       리를 맞는
의 교수 그리고 하루 백여 개의 강좌가 있었다고                       다. 각 나라
하니..현장법사님도 노려봤을만한 곳이었다. 앙                        순례자들이
상한 벽돌만이 남아 그때를 상상해 보는 것으로                        탑을 중심으
나가야 했다. 사리불존자와 목건련존자의 출생                         로 돌거나
지이자 열반지였다고 한다.                                   오체투지를
                                                 하거나 앉아
                 영축산          마하보디대탑

 죽림정사가 완성되기 전 부처님이 제자들과 지                        서 법문을
내던 곳으로 영축산은 수행과 명상의 도장이었      읽고 있다. 보리수나무 아래 부처님의 족적이 바
다. 빔비사라왕이 닦았다는 길을 따라 오르다 보    로 걸어 나갈듯 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어둠속
면 두 개의 작은 탑이 남아 있다. 산을 오르는 빔  에서 마하보디 대탑은 은빛으로 빛나고 있다. 아
비사라왕이 수레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 곳과 빔     소카왕에 의해 건립된 대탑은 최초 금강좌 위에
비사라왕이 시종도 없이 홀로 부처님을 향했던      건립되었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후 선
자리이다. 거의 문 닫을 시간에 도착해 가까스로    정에 잠겨 계셨던 7선처가 마하보티대탑 주변에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과 올라갔다. 어둠이 슬그     있다. 7선정처를 찾아나섰다. 규모에 놀란 무칠
머니 봉우리를 감싸더니 금세 어두워졌다. 영축     린다 용왕못..마하보디대탑 앞에서 바라춤과 승
산 봉우리 작은 법당에서 법회가 이루어졌다. 만    무를 본적이 있는가? 두 비구니 스님이 준비한
약의 사태에 대비해 내려오는 것도 같이 모여 내    바라춤과 승무가 마하보디내탑의 약한 불빛에
려왔다. 어둠속을 헤치며 마하보디대탑으로 향      요정처럼 옷자락이 날고 있었다.
했다.                           다시 새벽의 마하보디대탑에서의 법회가 시작
                              되었다. 신발 속에 숨겨온 핸드폰이 검문에 걸릴
                              까봐 조마조마했다. 먼저 검문을 마친 난숙에게
                              보따리 속에 넣어 주다가 걸렸다. 검문은 어느새
                              보따리 들고 도망간 난숙을 쫓으려다 말고 나를
                              검문한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고 들어오긴 했
                              지만 뒤에서 잡을 것만 같아 가슴이 콩닥거렸다.
                              핸드폰으로 꽃 공양하는 장면을 몇 장 찍긴 했지
                              만 두 번 할 짓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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