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 - 붓다동산7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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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란
向上一路(향상일로)
혜일동산임법원사단호장
오늘날과 같이 사회가 발전하고 여러 정보가 암스님의 가르침을 받으셨습니다.
홍수같이 밀려올 때 일수록 부처님의 말씀이 더 탄허택성(呑虛 宅成 스님은1913-1983) 오대
욱더 필요하여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시기라 여 산 상원사에 한암 스님을((1876-1951) 뵙기 전에
겨집니다. 사찰의 강원이나 승가대학, 일반 교향 즉 입산하기 전에 약 2 년 동안 한암 스님과 약
대학 등에서 스님과 불자님들은 부처님 말씀을 20 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마음이 통한
공부하여 대자대비 한 대승보살행과 수행 정진 것으로 보입니다.
하여 불확실한 정보사회에 보탬이 되어 가정과
사회, 나라에 일익을 담당해야 종교인으로써 할 “속생 금택은 글을 올립니다. 거룩하신 모습을 뵙
일을 다 한다고 보겠습니다. 이런 뜻을 감안하여 지 못하고 당돌하게 글을 올리게 되어 참으로 황공
근래의 스님 중에 유불선을 통달하시고 향상일 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스님을 우러러 존경
로를 외치시며 후학들을 길러내야 나라와 불교 하는 저의 마음은 잠시도 쉼이 없으니 다만 마음과
가 발전하고 우리들의 삶이 행복해진다는 일념 꿈을 통하여 오고 갈뿐 미길이 없나이다.......생략”
하에 수행 정진하셨던 오대산문의 탄허 대종사 “보내온 글을 두 번 세 번 읽어보니 참으로 일단
스님을 감히 조명해봅니다. 오대산 문의 큰 자랑 의 좋은 문장과 필법이네...생략, 이미 심월(心月)이
이신 탄허 스님께서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 한국 서로 비추어서 묵묵히 그냥 있을 수가 없네.”...생략
불교의 좌표와 방향을 이루고자 일생을 노력하
셨던 위대한 선지식이라 하겠습니다. 탄허 스님 편지의 내용에 심월(心月)이 서로 비춘다는 것
은 오대산에 입산 후 스승인 한암 스님이 열반하 은 의기가 상통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이러
기 직전까지 약 년16 동안 오대산 상원사에서 한 한 계기로 탄허 스님은 대20 초반에 한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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