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 - 붓다동산7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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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本靑山鶴 나는 본래 청산에 노니는 학인데 ■ 땀 흘리는 사명대사 표충비
常遊五色雲 항상 오색구름을 타고 놀다가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에 있는 홍제사
一朝雲霧盡 하루아침에 오색구름이 사라지는 바람에 (弘濟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양
誤落野鷄群 잘못하여 닭 무리 속에 떨어졌노라 산 통도사의 말사로 이곳에‘땀 흘리는 비’로 알
려진 표충비가 있다. 표충비는 비 높이 미2.76
사명은 과연 고승다웠다. 그 담대한 배짱과 칼 터, 비두(碑頭)와 기단석까지 포함하면 미터3.9
날 같은 선기(禪氣)가 이 시 한 수에 담겨 있다. 이며 폭 97센티미터, 두께 70센티미터의 검은
사명당이 일본에 잡혀간 조선포로 여명을3000 색 돌로 재질은 흑랍석으로 흔히 오석(烏石)이라
데리고 귀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德川 고도 부른다. 기와지붕으로 된 비각이 이 비를
家康과의 통쾌한 문답도 작용했던 것 같다. 보호하고 있다.
밀양경찰서는 홍제사 표충비의 땀 흘리는 현상
■ 대사의 열반 을 '표충비 한출(汗出) 동향'으로 역대 정권에 보
대사의 문제자 해안(海眼)이 사명대사가 열반 고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보자면 비석에서 땀
에든지 31년째 되는 인조(仁祖)18년에 지은 사명 이 나는 것 자체가 희한한 일일 뿐더러 그것을
대사 행적(行蹟)에 의하면, 권력층에서 민심과 연결시켜 예민하게 생각하는
대사가 가야산 해인사 홍제암에 들어가 병을 것도 이상한 일이다.
치료하고 있을 때, 임금은 여러번 약을 내리셨 이 땀 흘리는 비석은 비단 권력층의 관심사만
다. 경술년 가을에 임금이 염려하시고 서울에서 은 아니었다.‘요시찰 대상 1호’로 표충비를 관
치료하게 하려고 방백(方伯)으로 하여금 치송케 찰하는 관내 파출소에서는‘나라에 사건 사고 등
하라 하였다. 변고가 생기거나 데모 등 큰 정치적 이슈가 있을
그 해 8월 26일에 대사는 모든 승려들을 모아 때면 으레 표충비가 땀을 흘리지 않느냐는 일반
놓고 이르기를“네가지 요소(地,水,火,風)로 이뤄 인들의 전화 문의가 심심찮다’고 말한다.
진 이 몸은 이제 진(眞)으로 돌아가려 한다. 무엇 이처럼 사람들이 비석에서 땀을 흘리는 것과
하여 번거로이 오고가고 하면서 이 허깨비 몸을 나라 돌아가는 사정을 연결시켜보는 것에는 나
괴롭히겠는가. 나는 지금 죽음에 들어 큰 조화에 름대로 이유가 있다. 표충비는 년1894 갑오 동
순응하려 한다.”하면서 시자에게 몸을 씻게 한 학혁명 7일 전에 3말1되 분량의 땀을 흘린 이후
뒤에 조용히 앉아 열반에 들었다. 줄곧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생길 때마다
세수 세요67 , 법납 년53 3개월이다.’나라에 어김없이 땀을 흘려왔기 때문이다.
서는 훈위와 직품 그리고 시호를 내리고 3일 동 ■ 밀양표충사
안 조회를 폐하고 백성들은 철시를 했으며 임금 천황산 표충사는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
도 소찬에 음악을 금하는 한 편 대신, 공신의 예 리 재약산(載藥山)에 있는 사찰이다.
로 국징(國葬)을 지냈다.
년 월호16 | 2016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