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붓다동산7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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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유하신 고승이시다. 그분이 세에107 쓰신 한 그 일곡(一曲)이 방화계(傍花溪)요, 청옥협(靑
시(漢詩)족자(簇子)가 내방에 걸려있는데 그 내 玉峽), 신녀협(神女峽), 백운담(白雲潭), 명옥뢰
용이 청람산 계곡을 읊은 것 같아서 다시 플어 (鳴玉瀨), 와룡담(臥龍潭), 명월계(明月溪), 융의
적어본다. 연(隆義淵), 첩석대(疊石坮)등이다.
용담리(龍潭里)라는 우리 마을 이름은 와룡담
靑山 不墨 萬古屛, 流水 無線 千年琴 - 百七歲 呑空 에서 와(臥)자를 떼고 인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청산은 그리지 않았건만 만고의 병풍이요, 곡운 김수증은 명문대가에 태어났으나 성품이
흐르는 물은 줄이 없으되 천년의 거문고로세. 우아하고 고상한지라 숙중15년 기사환국(己巳換
局)에 동생 수항(영의정)과 송시열이 사사되고
청람산 오지랖에 펼쳐진 산하풍광(山河風光)은 형 수흥이 죽으니 서인(西人)의 세력이 기울게
어느 묵객(墨客)이 만고병풍에 그려 넣은 한 폭 되면서 벼슬도 마다하고 사탄(史呑-현제 사내
의 수묵화(水墨畵)더냐……. 면)에 들어와 곡운정사(谷雲精舍)를 짓고 주자
(朱子)삼매에 빠져 30년간의 은둔생활을 여기에
숙종조 대(代)의 문신(文臣) 김수증(金壽增)은 서 지낸 것이다.
평강군 현감으로 제수 받아 임지로 가는 길에 이 그 동안 생업에 매달려 자주 찾지 못하고 여가
런 절경에 흠탄하여 자기의 호 를(号) 곡 가 있을 때마다 내려가 석축도 쌓고 이름있는 나
운(谷雲)이라 칭하고 아홉구비(九曲) 아름다운 무들도 사다 심었으나 제대로 가꾸지 못한 탓으
계곡을 선택하여 이름을 짓고 곡운구곡(谷雲九
曲)이라 그의 정사기(精舍記)에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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