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 - 붓다동산7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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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歲暮)의 영(嶺)마루에서

                                         무루당 이 인 희 법사

                                              동산불교대학원

 저무는 을미년이다. 햇살도 얼었는지 열없이                  ■ 동지
춥다. 세모의 분위기가 왜이리도 울울하고 어수
선할까! 해를 넘기기 전에 가지런히 주변정리를                 동짓날은 팥죽(赤豆粥)을 쑤어 집안의 액(厄)막
하렸더니 현실이 나를 속인 것이다.                      이를 하고 이웃끼리 나누어 먹는 명절이기도 하
                                         거니와 조상의 향사(享祀). 임금님의 조하(朝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어른(尊長)을 모시는 의식이 설날과 같다하여 작
하지 말라.”                                  은 설(亞歲)이라고 했으니 팥죽 한 그릇에 한 살
                                         을 더 곁들여 먹어야 하는 날이다.
 푸시킨(1799 ~ 1837. 러)의 시문(詩文)에서 위안을 얻는다.   우리 절집에서는 아버지 수암(水菴) 스님께서
                                         모시는 삼존불전(三尊佛前)에 동지 공양이 먼저
 인생불만백(人生不滿百)인데 상회천세우(常                  올려지고 다음으로 안방에 계시는 성주님께, 조왕
懷千歲憂)리오 사람이 백년을 채워 살지도 못하                신(窕王神)은 부뚜막에, 칠성님은 장독대에, 해우
면서 늘 천년어치의 근심을 품고 살아야 하나!                소(解憂所)에 은거하고 있는 칙신(厠神)에게도 죽
                                         한 그릇을 보시하여 벽사초복( 邪招福 삿된 것
“방하착(放下着) 하라.” -圓悟心要-                    을 쫓고 복을 부름)을 빌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조
                                         왕신은 본처요, 칙신은 첩이었다고 한다. 처첩관
 조주선사의 일갈(一喝)이 환청으로 들린다. 번뇌망상 다 내려       계에 있는 두 여신들은 질투와 시새움이 대단해서
놓고 빈 마음으로 청복(淸福)을 받아들이라는 경책(警責)이시다.      부엌과 변소는 멀수록 좋다는 민화도 있다.
                                          첩이었던 칙신은 성품이 사악하고 교활하여 해
 새날(元旦)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동짓날 액               우소에 은신해 살면서 종종 사람에게 해코지를
(厄)막이에서부터 시작된다.

년 월호6 | 201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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