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9 - 붓다동산7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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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금강경을 보면 법화경에서는 삼주 설 오다가 그것을 간결하게 설하기 위해서 게송을 읊
법을 하고 있는데, 금강경에서는 이주설법을 하고 은 것이 있어요. 문장이 짤막짤막하죠.
있습니다. 이주 설법을 하고 있다는 것은 전반부에 그런데 그건 뭐냐 앞에 장문으로 되어져 있는 것
서는 수행에 그러한 공을 밝히고, 후반부에 가서 들을 정리해서 다시 거듭 설하면서 그 뜻을 천명했
보리의 과공을 밝힌다. 그런데 이 공이라고 하는 다. 그런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 경정 보다보면 장
말은 금강경에서 보면 대승이니 소승이니 하는 말 문으로 되어진 뒤에는 게송이 붙어 있어요. 그 게송
이 안 나와요. 이라는 게 그 앞에서 있어온 것을 거듭 설한 것이
그리고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 연기법에 있어서 다. 이런 게 있습니다만.
의 공이라는 말도 잘 안 나옵니다. 그 왜 그러냐? 그런데 대개 금강경을 여러분이 볼 때에는 앞에
그러한 학문적인 이론이 성립하기 이전에 그러한 서 설한 것을 뒤에서 거듭거듭 설한 것으로 알고 있
논서 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어 는 사람이 많아요. 같은 소리를 너무 많이 하고 있
요. 그 때만하더라도 소승이니 대승이니 하는 그러 다. 그런 것이죠. 그런데 같은 소리가 아니에요. 전
한 논리가 빈번하게 설하지 않았다. 이런 점이 있 반부에서 빠진 것을 후반부에서 보충하고 있고, 후
습니다만, 이 금강경을 대체로 보면 전반부 후반부 반부에서 빠진 것을 전반부에서 하고 있다.
란 뭐냐? ‘조계 육조선사’라고 그랬는데, 대개 우리가 말
대개 전반부는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금강경 할 때 육조스님은 무식하다. 일자무식하다. 이런 말
은 32분으로 되어있죠? 그 분32 금강경을 분류한 많이 들었죠? 그렇게 단조롭게 말해서는 안 됩니
사람은 양나라 양무제의 아들 중에 장자가 소명태 다. 그렇게 무식한 스님이 어떻게 이렇게 논리 정연
자가 있는데 그 소명태자가 경전을 보고 분석한 거 한 이론을 전개할 수 있겠는가? 그런 거요. 그러니
예요. 그래 소명태자는 유 . 불 . 선 3도에 통하지 까 그 무식이라고 하는 말이 글을 모른다. 그런 것
않은 게 없다고요. 학문적으로 대단히 깊고 또 양무 이 아니라 이치를 깨달아 나아가는 데에는 언어문
제 자신도 불교 이론에 굉장히 밝은 사람이에요. 자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소리에요. 글을
그런데 이 소명태자가 분류한 분32 해놓은 것을 모른다. 소리도 아니에요. 사실은. 그러니까 이게
지금도 답습하고 있다고요. 그 분32 해놓은 것을 불립문자. 문지를 두지 않는다. 그러니까 불의문자
지금도 답습하고 있는데, 그 답습하고 있는 것을 보 도 있어요. 문자에 의존하지 않는다.
면 제 16까지는 전반부요, 제 17 이후는 후반부이 그런데 육조스님은 6세기 초반에 계시던 스님인
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반부는 이 데 이 금강경을 아주 두드러지게 생각했던 것은 5
근인을 위해서 설한 것이다. 그것이죠. 조 홍인대사로부터 금강경에 대한 설법을 듣고 이
이근인 이라는 것은 한 순간 지혜를 가진 사람 하 치를 깨달았다. 단서가 되죠. 그게 5조 홍인대사까
는 것이죠. 이근 그러니 돈근이죠. 대개는 후반부에 지는 사실은 달마스님에게서부터 내려온 것은‘능
가서는 둔근 이를 위해서 설했다. 경전들은 그렇습 가경’입니다. 선종의 소의경전인 능가경 이었는데
니다. 대개 어떤 경전이든 보면 장문으로 죽 설법해 5조 홍인대사에게 와서 6조 스님을 대상으로 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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