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종 이후 혼란했던 마음 불화공부로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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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09-08-22 16:19 조회3,846회 댓글0건본문
나는 기독교적 사고 공간 안에서 성장하며 살아온 시간이 삼십년이 넘는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온 내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친구의 권유로 불교적인 토대에서 운영하는 명상수업을 받게 되면서 부터다.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래려고 1주일 정도를 예정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는데 뭔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3개월이라는 시간을 그 곳에서 보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선을 그어 놓고 나만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이해하려고 했던 것들이 ‘불교라는 틀로 정리 되어야 하겠구나’ 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천주교와의 인연을 끊게 되기까지 일도 마치 상급학교에 진학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워서 스스로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예정된 일 이었을까.
명상수업이 끝날 즈음 슬슬 생기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병이 되어 머리로 이해될 듯싶은 각종 경전들과 불교 관련 책들을 사들여 읽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는지 조계사에서 진행하는 교리 수업까지 인연이 닿았고, 계속해서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 경전 수업을 받았다.
명상수업이 끝날 즈음 슬슬 생기는 호기심과 궁금증이 병이 되어 머리로 이해될 듯싶은 각종 경전들과 불교 관련 책들을 사들여 읽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는지 조계사에서 진행하는 교리 수업까지 인연이 닿았고, 계속해서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 경전 수업을 받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열심히 자신을 트레이닝 시키면서도 가끔 스스로를 당혹하게 하는 것도 있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 졌지만 기독교적 언어와 행동양식들이 자연스럽게 툭툭 입과 몸에서 흘러나와 나뿐만 아니라 주위의 불자들을 당혹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역시 오랜 시간 굳어져 온 것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나 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머리와 마음을 어지럽게 만드는 요소들을 정리해 나갔다. 그러면서 차츰 몸과 마음이 불교적인 것들에 젖어들어 갔다.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런 동작이 표출되며, 마음이 움직이는 소리에 집중하고 편안함을 유지하기가 한결 쉬워졌다. 그리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한결 자유롭고 익숙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자연스러운 편안함이 타성으로 굳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다. 또한 여전히 이따금 찾아오는 기독교적 습관과 가족들과는 다른 종교로 혼선을 빚을 때가 있었다. 이럴 때 중심을 잡아 준 것은 불화공부다.
어렵게 만난 불교와의 인연을 타성에 젖지 않고 오랜 시간 지속할 수 있는 신행활동을 찾은 것이다. 사실 내가 불교와 인연이 닿지 않았던 20대와 30대 시기에도 건축설계 일을 하면서 한국의 고건축 매력에 빠져서 전국의 웬만한 절집은 빠지지 않고 다녔다. 그때의 인연으로 불교와의 인연은 물론, 탱화 공부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10년 넘게 매주 절집 답사를 다니면서 나도 모르게 부처님의 가피를 입은 것일까. 어쨌거나 불교로 인해 시작한 불화 공부가 단순히 불교 신행의 수단을 넘어 어쩌면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어버린 지금은 충만한 만족과 자비심의 힘으로 살고 있다.
불화 공부를 하게 되면 초심자들은 처음으로 사불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사불은 일종의 습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미리 그려진 초 즉 밑그림 위에 얇은 종이를 대어 시왕, 4천왕, 보살 등의 그림을 선을 따라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림 하나하나를 그대로 베끼는 작업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물론 습화를 하는 목적은 붓을 잡는 법을 몸에 익도록 하기 위함이고, 그래야만 선의 흐름도 알고 필력이 붙을 수 있다.
(정진행·44) 동산불교대 불교학과 33기
1010호 2009년 08월 18일 법보신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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